방문자 여러분과 질의응답을 하는 공간입니다.

린첸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5) : 불교의 우주론, 중생구제, 해탈의 의미

린첸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5) : 불교의 우주론, 중생구제, 해탈의 의미

질문4. 불교에서와 같이 중생구제의 목적인가, 세속을 벗어난 영원한 대자유 증득 (해탈) 이런 건가 아니면 그런 과정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인가, 더 구체적인 테크닉이 있다는 것인가, 더 윤리적인 것인가, 왜 지금 여기 신지학이 필요한가

 

불교에서 중생衆生이란 말은 유정有情이란 말과 동의어로, 산스끄리뜨어 “sattva”를 한역한 말로,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것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특수하게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고 보면 중생구제란 말은 매우 다의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에 오면, 중생의 범위는 매우 확장되어서, 성문, 독각 아라한은 물론이고, 보살들 역시 중생에 포함됩니다. 말 그대로 부처를 제외한 모든 존재들을 중생의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중생이라고 한다면, 중생구제의 의미는 매우 난해하고 복잡한 개념입니다. 또한, 어디까지가 중생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살아있음인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삼계三界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중생으로 정하고, 그 삼계로부터 인간이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면, 역시 복잡한 의문이 또 제기됩니다.

 

삼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고 하면 간단할 것 같지만, 그것은 말 뿐입니다. 실제로 그들 세계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지어 욕계, 색계, 무색계를 더 세분화해서, 욕계 내에 존재하는 차별화된 세계들은 각각 어떤 것인지, 색계와 무색계 내에서도 더 세분화된 세계들은 어떤 것인지, 정말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일 것입니다. 삼계에 대한 이해는 복잡하고 난해한 우주론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말로 세속을 벗어난 해탈이 무엇인지는 절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욕계 내에서 인간계만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고, 동물계에 대해서 조금 공감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하고 복잡한 삼계를 벗어나는 일은 참으로 요원해 보이고, “삼아승기겁이 걸린다고 하는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현대의 영적 열망자들은 과거의 영적 열망자들에게 적용되었던 우주론에서 만족스런 설명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불교도들은, 옛날의 우주론은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것이라고 무시하고, 개인적 명상수행에만 집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어떤 경험이나 의식 상태가 되면, 그것을 해탈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계로부터의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적 가르침은, 결코 삼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벗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고, 해탈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모순입니다. 현대의 발달된 우주과학 덕분에, 고대의 많은 우주론은 신화적이고 매우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평가받게 되었고, 달라이라마 같은 분도, 불교적 우주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하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속을 의미하는 삼계로부터의 해탈이라는 불교의 해탈관은 수정이 되어야 하든가, 아니면 그 동안의 해탈관은 어떤 변형을 겪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 삼계로부터의 해탈이라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해탈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의 변형 정도로만 해탈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고대의 우주론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고, 아직 현대의 과학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성자들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경지의 수행자들만이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세계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동안의 삼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매우 제한된 이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블라바츠키의 신지학적 설명이나 DK대사의 가르침에 의하면, 삼계는 결코 신화나 시적인 표현도 아니고, 현대의 천문학적인 지식으로 접근할 수 없는 매우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를 가리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불교를 이해하면, 불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세계를 제시하고 있고, 부처의 깨달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고 심오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삼계에 대한 이해가 변하면, 그에 상응해서 삼계로부터 벗어나는 수행방법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수행방법에 부수되는 윤리적 기준과 실천에 대한 이해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의 발달된 과학문명을 상대하는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기존의 종교적 전통들은, 전통적인 우주론에서 납득할 만한 이해나 설명도 제시하지 못하고 무기력합니다. 그 결과,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의 막연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2,500여 년 전에 부처께서 전한 해탈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게 고찰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신지학이나 DK대사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조금 더 명료해진 것 같습니다.

 


린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7-18 (월) 18:17 1년전
감사합니다 _()_
주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