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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첸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2) : 종교 통합의 의미

린첸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2) : 종교 통합의 의미

 

 

질문1. 신지학이 모든 종교는 하나의 원리로 통섭 또는 통합하는 설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각 개별 종교를 따라가도 궁극적 도달점은 같은 것이 아닌가?

 

블라바츠키의 저서인 시크릿 독트린The Secret Doctrine”의 겉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습니다.

진리보다 높은 종교는 없다There is no Religion higher than Truth.” 

 

종교의 통합 혹은 통섭과 관련해서, 블라바츠키의 이 말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문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진리종교는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종교도 진리와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종교적 가르침도 진정한 진리에 도달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진리는, 종교가 무엇이든, 종교라는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바다 건너 섬 정상에 있는 보물이라고 한다면, 종교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 필요한 배와 같습니다. 여러 종류의 배를 통해서 그 섬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 섬에 도착하면 배를 버리고, 섬 정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배를 끌고서 갈 수도 없고, 바다를 항해할 때의 방법과 기술을 갖고서 섬을 등반할 수도 없습니다. 배에 집착을 하면서, 배를 육지로 끌고 올라가서 산 정상까지 가려고 한다면 결코 정상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각 개별종교를 따라서 궁극적 도달점에 이르기보다는, 특정한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고, 그 지점은 결코 궁극적 진리는 아닐 것입니다. 종교의 통합은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의 원리로 각 개별종교들을 통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는 것은, “그렇다면,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현재 인류에게 비중 있게 남아있는 종교에는,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등 몇 개의 대표적인 종교적 전통들이 있습니다. 이들 종교들의 공통점은, 특정한 지역과 문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동일한 종교 내에서도, 각각의 역사 문화적 배경에 의해서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들이 존재합니다.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은, 제한적이고,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것이고, 매우 선별적이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기독교적 접근과 불교적 접근이 매우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름의 민족적 배경과 지역적 차이점을 고려하면, 지역적 특산물처럼, 각 종교 역시 그런 특수한 환경에서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발생한 종교적 전통과 유목민사회에서 생긴 종교적 전통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다릅니다.

 

불교를 예로 들면, 남방불교권의 불교와 북방불교권의 불교에 차이점이 많고, 교리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방불교권에서도 나라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으면서, 더 제한된 전통으로 발달되었습니다. 북방의 불교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 전파되면서, 인도 북방의 불교는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종교의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심지어, 동일한 지역에서도 왕조가 바뀌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불교적 전통은 변화를 겪었고, 불교적 전통 내에서도 학파마다 강조점이 다르고, 그런 세분화가 몇 백 년 지속되다 보면, 교리해석이나 수행전통에서도 매우 다른 학파와 종파가 생겼습니다. 또한, 동일한 학파 내에서도 신도나 성직자의 개인적 배경, 취향, 선호도, 역량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지면서, 다시 더 세분화되고 차별화됩니다.

 

이런 과정은 불교만이 아니라, 기독교 역시 그렇고, 오래된 종교적 전통일수록, 특히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전파되어 있는 종교일수록 심합니다.

 

비록, 역사적이고 지역적으로 보기에는 종파들과 학파들이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즉 그들 학파들과 종파들이 갈라져 나온 근원적인 종교적 전통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동일하고 통합하는 원리가 있지 않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학파와 종파들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근원적인 원리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고, 동일한 해석이라도 특정한 환경에서 적용하는 데 있어서 또한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언어의 차이가 하나의 촉매역할을 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전이나 주석서가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내용상의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미 번역하는 과정 그 자체는, 새로운 환경과 민족에 맞춰 변형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리의 맥락에서 생각하면 더 힘든 문제들이 제기됩니다. 각 종교적 전통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리문제를 조사해보면, 교리는 수많은 견해 차이와 논쟁과 반목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지난 몇 년 동안 티벳불교 중관을 공부하시면서 확인하셨겠지만, 달라이 라마께서 중관이나 무아, 혹은 공성에 대해 강론을 하실 때, 어쩔 수 없이 달라이 라마께서 대변하는 겔룩파의 관점을 피력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겔룩파의 견해는 다름 아닌 총카파의 견해를 중심으로 발달된 견해이고, 티벳불교권에서 특정한 종파의 한 가지 견해입니다. 총카파 생존 시에 이미 다른 종파들의 대표적인 논사들은 총카파의 중관과 공성의 견해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런 비판은 최근에까지 이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겔룩파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현대의 외부인들이 접하는 티벳불교를 대표하는 교리적 해석은 다른 종파로부터 나왔을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공성과 무아의 문제인데, 그 주제들과 관련해서 인도와 티벳의 논사들은 끊임없이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고, 그 결과 방대한 양의 논증과 해석 자료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쯤 되면, “진리보다 높은 종교는 없다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께서, 장님들 코끼리 만지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다양하고 상이한 견해들과 해석들을 모두 모으면 제대로 된 종교적 가르침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하고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서로의 견해와 해석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아니 대를 이어서 논쟁하고 다투고 있을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세속적인 정치적 권력에 의해서 한 가지 해석과 견해로 강제로 통합 정리되는 일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게 불교의 역사이고,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다른 종교들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장님 한 사람이 인식한 것에 의존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코끼리 전체를 그려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장님들의 관점을 모아서 종합한다고 해도, 역시 제대로 된 코끼리를 그려낼 수 없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특정한 교조가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했을 때, 완전한 궁극적 가르침을 전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교조는, “특정하다는 말 그대로, 특정한 시대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특정한 관점의 진리를 전했습니다. 결코 전체적이거나 궁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르침을 전하지 않았고, 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적 가르침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교도가 될 수도 없고, 기독교도가 될 수도 없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믿고 절대시하고 있는 종교지만, 먼 미래에는 유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매우 오랜 과거에 생겨났던 종교들이 지금은 역사적 유물로만 남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나 불교에서 이미 많은 부분들이 유물이 되었고, 또 그런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먼 미래에는 불교나 기독교적 전통을 역사 교과서에서만 다루게 될 것입니다.

 

불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유위법有爲法이라고 부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겨난 것이고, 생겨난 것은 일정한 기간 동안 존속하면서 변화를 겪다가 소멸한다고 합니다. 종교도 예외일 수 없고, 불교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각 개별종교를 통해서 궁극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7-05 (화) 23:52 11개월전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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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gm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7-07 (목) 17:35 11개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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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7-07 (목) 23:22 11개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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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7-07 (목) 10:51 11개월전
종교와 진리의 관계에서 종교란 끊임없이 진리로 가기위한 형식일 뿐이고 이 또한 만고불변이 아닌 계속 변화한다는 점도 잘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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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gm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7-07 (목) 17:44 11개월전
DK대사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에 출현한 종교들은, 어떤 위대한 영적 존재들이 특정한 시기에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특정한 우주적 에너지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종교는 단지 형식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없고, 산이나 바다처럼, 아주 실제적인 에너지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운행하듯이, 우주적 에너지에는 주기가 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해서 지상애 존재하는 종교들에 변화가 생기고, 어떤 경우에는 부정적인 장애가 되기도 해서,
지상에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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