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론"이란 어떤 논서인가?(2)

"보성론"이란 어떤 논서인가?(2)

 

 

보성론은 일곱 개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1. 부처Buddha

2. 다르마Dharma

3. 상가Sangha

4. 불성Tathagatagarba

5. 깨달음

6. 깨달음의 속성

7. 부처의 공덕

 

일곱 개의 주제들에서 보듯이,

3차 법륜에 속하는 보성론13차 법륜의 가르침의 핵심들을 다루고 있다.

미래의 부처로서 세상에 오시기로 예정되어 있는 미륵彌勒 보살”,

마이뜨레야Maitreya”아상가Asanga(무착 보살)”

도솔천Tushita에 데리고 가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는데,

그 중에 미륵 5이 있었다고 한다.

티벳불교권에서, “보성론은 미륵 5론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인도에서 온 샨따락쉬따Shantarakshita”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를 통해서

티벳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졌던 초기에는

현관장엄론”, “대승장엄론”, “중변분별론은 티벳어로 번역되어서 널리 알려졌지만,

법법성분별론보성론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인도에서 논서들이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인도의 위대한 성취자였던 마이뜨리빠Maitripa”

한 수투파stupa의 갈라진 틈새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기해서 내부를 보았는데, 두 개의 논서가 있었다.

법법성분별론보성론이었다.

논서들의 내용에 대해서 확신하기 어려웠던 마이뜨리빠는 마이뜨레야에게 기도를 했고,

그 결과 마이뜨레야가 직접 그 앞에 나타나서

보성론에 대한 구전口傳을 주었다고 한다.

그 후로 마이뜨리빠는 논서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논서는 인도의 많은 학자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마이뜨리빠는, 티벳의 대표적인 종파의 하나인 까규파Kagyu”의 교조인 역경사 마르빠Marpa”에게

까규파 최고의 가르침인 마하무드라Mahamudra”를 전해준 스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티벳 까규파의 마하무드라 법맥에서 보성론은 근본 논서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3차 법륜의 핵심을 요약하면, 두 가지 종류의 무아無我라는 말로 정리된다.

라고 부를 수 있는 독립되고 영속적인 개별적 존재의 실체성이 없다는 인무아人無我”,

일체 현상에도 독립되고 영속적인 실체성이 없다는 법무아法無我”,

이 두 가지를 이무아二無我라 부른다.

 

무아는 부처의 깨달음의 본질이기 때문에,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주제인 만큼,

무아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해석이 이루어졌고, 동시에 많은 오류와 극단적 결론들로 인해서,

부처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많은 수행자들은 장애에 빠지기도 했다.

 

부처의 모든 가르침을 동일한 차원에 두고,

더구나 연구자 자신의 근본적인 무지와 제한된 경험을 토대로,

사변적이고 문헌적인 작업에 중심을 둔 불교에 대한 이해는,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가 되기도 한다.

 

모든 영적 전승과 마찬가지로, 불교 전승에도 두 개의 흐름이 있다.

하나는 개념적이고 사변적인 작업을 주로 하는 학문적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적 명상수행을 토대로 실제적인 의식의 변형을 중심으로 하는 명상적 전통이다.

전자는 역사적 문헌연구에 치중해서 개념들을 비교하면서 관련성을 찾는 작업인데,

부처의 모든 가르침이 영적 수행을 통해서

의식의 변형을 이룬 결과 경험된 세계를 전하고 있다는

매우 평범하고 기본적인 진리를 망각하면,

사변적인 추상적 작업에 매몰되기 쉽고,

극단적인 경우는 인간 의식의 확장을 가로막는 도그마가 되어 버린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해지는 직접적인 가르침은 결코 학문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영적 스승들이 전한 가르침이 그런 범주에 속하고,

부처의 가르침도 예외는 아니다.

마이뜨레야라고 불리는 인류의 영적 스승이 아상가라는 영적 수행자에게 전한

미륵 5은 특별히 그런 범주에 속한다.

 

보성론은 대승의 대표적 논서들처럼, “무아공성에 대해 설한다.

그런데, 그 핵심에는 삼보”, 부처, 다르마, 상가가 있다.

깨달음을 완성시킨 부처의 행위가 펼쳐지는 부처의 공덕에 이르면,

인무아법무아에 대한 이해가 차원을 달리한다.

무아혹은 공성이라고 말할 때는,

결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나 일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까규파의 표현을 빌면, 일체의 실체성이 부정된

공성과 투명한 광명이 둘이 아닌 진여眞如의 실상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일체의 현상계가 여래如來라고 일컬어지는 본성에서 비롯되는

빛의 현현인 것이다.

 

부처의 방대한 가르침은 그렇게 해서 “3차 법륜의 가르침,

여래장불성의 가르침으로 마무리되면서 종합된다.

여래장혹은 불성을 학문적 사변의 영역에서 이해하면,

크나 큰 오류와 자가당착에 빠진다. 그것은 믿음과 귀의의 문제이고,

직접적인 종교적 명상 수행을 통해서 인식되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영적 스승과 제자 사이에 공유하는

비밀스런 깨달음을 상징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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