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거짓말을 할까?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할까?
     
    
불교에서는 인간이 삼가야 할 열 가지 행위를 십불선업十不善業이라고 부른다. 이 열 가지 행위는 몸, , 생각으로 하는 나쁜 행위들인데, 몸으로 짓는 3가지 종류의 불선업(살생, 투도, 사음), 말로 짓는 4가지 종류의 불선업(망어, 기어, 악구, 양설), 그리고 생각으로 짓는 3가지 종류의 불선업(탐욕, 진에, 우치)이 있다. 주목할 것은, 말로 행하는 선하지 않은 행위가 다른 것에 비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그 간단한 의미를 살펴보면, 망어妄語는 허언, 즉 거짓말을 하는 것, 기어綺語는 무의미하고 무익한 꾸미는 말, 잡담을 의미하고, 악구惡口는 험담하고 욕하는 말, 양설兩舌은 이간질하는 말을 의미한다.

몸과 말로 하는 행위는 더 근본적인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생각 혹은 마음으로 하는 행위가 원인이 되어서 몸과 말로 하는 불선업이 이루어진다. 생각 혹은 마음으로 짓는 근본적인 불선업은 탐욕(욕망), 진에(), 우치(어리석음).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하는 행위는 십불선업 중에서 망어에 해당되고,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기어, 악구, 양설 모두를 포함한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진정성 있게 말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거짓말을 넓게 적용시키면 기어, 악구, 양설 모두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면, 인간이 말로 하는 행위는 마음의 충동질에 의해서 나오는 것인데, 인간의 언어적 행동을 지배하는 동기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다. 인간은 욕망하는 것이 있거나, 그 욕망이 좌절되거나 불만족스러워서 스트레스와 화가 치밀 때, 혹은 단순히 어리석어서 거짓말을 한다.

어떤 대상을 소유하고 싶거나, 자신이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 대접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제시했을 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면, 인간은 쉽게 거짓말의 유혹을 받는다. 욕구가 과감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으면 포기하겠지만, 욕구가 압도하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인간은 원하지 않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의해서도 거짓말을 한다. 부모가 혼낼지도 모르는 행동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그 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에게 가할 수 있는 처벌이나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 쉽다. 그런 경우에는, 특정한 행동을 했을 때 처벌을 받았던 기억이 각인되어 있는 경우이거나,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칠 거라고 감지한 경우다.

인간의 삶은 만족과 불만족 사이를 오락가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만족스런 상태를 갈구하는 마음에서 거짓말을 하든, 불만족스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든, 인간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기억은 왜곡되기 쉬워서, 시간이 가면서 덧붙여지고 빼지면서 변형된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만족과 불만족을 오고가는 가운데 반응하는 경험들이 축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고유한 발달된 특징이라고 하면,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 지어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기억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분석도 없을 것이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현재를 해석하고, 더 나아가서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각종 정신적 질환이나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방법 중 하나는, 어린 시절이나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기억 중에서 매우 강력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트라우마trauma”라고 부를 수 있다. 특정한 장애를 일으키는 트라우마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을 때, 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의식 전반에 축적되어 있는 기억이라는 넓은 저장고에서 유난히 특정한 시기에 두드러져 보이는 기억의 하나가 트라우마일 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인간의 의식은 잠재적인 수많은 트라우마들의 집적체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삶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반복적으로 윤회하는 존재다.

이번 생의 트라우마만이 아니라, 과거생에서 각인된 트라우마까지 인간의 기억을 구성한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은, 다양한 환경적 조건들과의 관계 속에서 육체적 행위, 감정적 욕망적 행위, 지성적 행위들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경험들과 관련된 인상들을 축적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면에서 보면, 과거에 축적된 기억들을 가동시키면서 현재 경험하고 있는 환경에 대처하고, 나아가서 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야생에서 동물이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 자신을 은폐시키고 위장하는 것에서부터, 국가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각종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능숙한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기억이라는 창고를 드나들면서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고 예측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행위를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불교에서는 십불선업중에 거짓말을 넣었을까? 불교에서는, 삼계를 벗어나는 해탈에 유익한 행위를 선한 행위, 해탈을 방해하고 삼계에서 더욱 윤회하게 만드는 행위를 불선()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윤회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지라고 한다. 무지를 구성하는 가장 주된 요소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일컬어 무지라고 한다. 실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이라는 기능 때문이다. 무시이래로 윤회하면서 경험한 것들이 의식에 축적된 결과, 윤회의 세계가 실재하고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무지다. 거짓말이라는 행위는 그런 기억을 더욱 왜곡하고 변형시킴으로써 무지를 더 강화시킨다. 거짓말은 단지 거짓말하는 사람 자신의 기억만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의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까지도 왜곡하고 변형시킴으로써, 무지를 강화시킨다.

기억은 인간이 육체적, 정서적, 지성적 환경과의 상호관계에서 경험한 것들의 흔적이고, 동시에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명상이라는 과정 속에서 초기에 확인하는 것은, 폭포처럼 쇄도하는 과거의 기억들이다. 기억들을 마주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정직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즐거운 기억들만이 아니라 불쾌하고 고통스런 기억들이 밀려들 것이고, 명상이라는 과정 자체가 매우 고통스런 시간일 수 있다. 명상을 하면 마음의 휴식을 취하게 되고 지복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의 명상의 과정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의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모습들을 보게 될 것이고, 때로는 부도덕하고 형편없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거짓말을 하고 싶은 유혹이 일어난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좋은 말로 하면 정당화하고 합리화함으로써, 어떻게든 그 고통스럽고 불만족스런 기억을 수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명상의 과정은, 만족스런 기억들과 불만족스런 기억들을 정직하게 마주할 때, 그리고 그 기억들을 어떤 식으로 왜곡하고 변형시키려고 했는지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허구적이지 않은 실재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단계에 도달한다. 그렇게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인간은 거짓말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거짓말은 진실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하는 어떤 명상도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도, 지혜를 줄 수도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기억을 날조하고 왜곡한다. 그리고 왜곡된 기억을 명상의 경험이라고 타인들에게 주장한다.

왜곡되고 날조된 기억의 창고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타인에게 정직할 수 있고, 그 정직함으로 초래될 수 있는 불이익에 직면해서도 초연할 수 있다. 자신이 정직하게 말했을 때 혹시나 비난을 받거나 불이익을 겪게 된다는 기대감이나 두려움이 인간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한다. 그 결과, 누군가가 자신에게 정직하게 말할 때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충동질하는 기억에 의존하는 인간의 마음은 막연한 두려움까지 느끼는 것이다. 그런 기대감은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 있는 그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한다.

진정한 명상은 있는 그대로의 현재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기억으로부터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 직메 정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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