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 윤회도Bhavachakra 설명2



 

탐진치를 상징하는 중심의 원 바깥에는, 두 가지 종류의 윤회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인간은 어떻게 행위하면서 살았느냐에 따라 여섯 가지 존재 형태, 즉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인간도, 수라도, 천도라는 육도六道에 윤회를 한다고 한다.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의 셋을 삼악도三惡道라고 부르는데, 인간이 선하지 못한 행위들을 했을 때 태어나게 되는 세 가지 세계를 의미하고, 오른쪽에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로 상징화되고 있다. 삼악도는 고통 밖에 없는 세계다.

 

왼쪽 반원에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인간도, 수라도, 천도의 삼선도三善道를 상징한다. 삼선도는 선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으로 즐거움과 만족이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삼악도와 삼선도를 결정하는 힘은 카르마, 즉 업의 힘이다. 선한 업에 의해 삼선도에 태어나고, 악한 업에 의해 삼악도에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탕카에는 오른쪽 반원을 어둡게 그리고, 왼쪽 반원은 백색으로 그린다.

 

세 번째 동심원은 다섯 칸으로 분류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에 그려져 있는 그림에는 인간세계가 묘사되어 있다. 인간계는 고통과 기쁨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끊임없는 고통으로 인해서 괴로움만 겪으면서 쫓겨 다니는 존재도 아니고, 끊임없는 만족으로 인해서 행복에 도취되어 있어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없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고통과 만족을 오락가락하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더 큰 만족과 행복의 세계를 염원하면서 노력할 수 있는 세상에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탐욕과 성냄이라는 문제들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무지라는 근본적인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인간은 삼악도의 고통와 삼선도의 행복을 비교할 수 있는 존재이고, 더 나아가서 육도 전부를 초월하는 해탈의 세계를 열망하면서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만 근원적인 지혜를 통해서 영원한 해탈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왼쪽 위 칸에는 천도와 수라도가 그려져 있다. 왼쪽 아래의 수라도에는 천도를 향해 화살을 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수라도와 천도에 태어난 이들은 행복이란 면에서 차이가 있어서, 수라도에 태어난 이들은 천도에 태어난 이들을 향한 질투심과 분노로 고통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천도와 전쟁을 한다. 그러나 전쟁을 할 때마다 수라도의 중생들은 패배를 겪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고통이다.

 

천도에 태어난 이들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행복과 만족으로 인해서 아무런 불편함도 문제도 느끼지 않는데, 천도에 태어나게 했던 모든 선업이 고갈되면 다시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데, 그들이 떨어지면서 경험하는 절망적 고통과 두려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천도에서 벗어나면 그들이 과거에 행했던 악업에 상응하는 결과가 펼쳐지면서 낮은 세계에 태어나는 절망적인 고통을 겪게 한다. 천도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만족스럽고 즐겁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존재들은 해탈을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즐거움만을 누리느라 분주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해탈의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육도를 지배하는 속성은 덧없음과 변화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도록 천도에서 행복을 누렸다 해도, 다시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왼쪽 중앙에는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축생도를 의미한다. 동물들은 끊임없이 두려움과 공포라는 고통을 겪는다. 매순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힘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한 시도 쉴 수 없이 경계해야 하고 도망 다녀야 한다. 그들 역시 매순간 엄습하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서 해탈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오른쪽 중앙에는 아귀도가 그려져 있다. 아귀도에 태어난 이들은 배고픔과 목마름이라는 두 가지 고통의 지배를 받는다. 극도의 배고픔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코 그 배고픔을 충족시킬 수 없고, 충족시키려는 노력 그 자체가 더 큰 배고픔을 낳는다.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먹어도, 물은 뜨거운 불로 변해버려서 더 큰 갈증과 고통을 생기게 할 뿐이다. 아귀도에 태어난 이들은 끊임없는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인해서, 벗어나는 길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제일 아래에는 지옥도가 묘사되어 있다. 왼쪽에는 여덟 개의 뜨거운 불지옥(팔열지옥)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여덟 개의 극도로 춥고 차가운 지옥(팔한지옥)이 그려져 있다. 지옥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고통만 경험하는 세상이다. 견딜 수 없는 온갖 고통으로 비명과 절규만 가득한 세상이다. 어디 한 구석에도 위로나 휴식이 없이, 고통으로 절규하고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면서 연이어 이어지는 고통만 반복하는 곳이다. 이 세계 역시 쉬지 않고 가해지는 고통으로 인해서 해탈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지옥에 태어나게 된 업이 다 소진되기 전에는 결코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으로 살면서 선한 행위를 하면서 이타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 삼악도에 태어나지 않고, 삼선도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도에 태어난다는 것은 육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귀한 기회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해탈을 추구하는 삶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으로 사는 동안, 지혜를 추구하고 다른 존재들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고, 삼악도로 떨어지는 일을 막기 때문에, 불법을 가까이 하고 닦고 깨닫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주요하다.

 

제일 바깥의 원에는 열두 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열두 개의 그림은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의미한다. 십이연기는 삼사라의 삶을 지배하는 열두 가지 순환 고리를 의미한다.

 

위쪽 오른쪽 첫 번째 그림에는 눈먼 장님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길을 더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십이연기의 첫 번째 고리nidana무명無明을 의미한다. 십이연기, 즉 삼사라의 윤회는 무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무명의 핵심은, 인간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들, 즉 오온에서 자신의 참된 자아를 찾고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자아에 대한 집착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탈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시계방향으로 그 다음 그림에는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도공이 그려져 있다. 무명을 원인으로 하는 이다. 산스끄리뜨로 삼스까라samskara”를 가리키는데, 무명, 다른 말로 무지에 의해서 미세한 작용이 일어나면서, 다음에 이어질 결과를 위해서 의지적 작용이 전개됨을 의미한다.

 

세 번째 그림에는 과일을 잡으려는 원숭이가 그려져 있는데, “을 의미한다. 의식이란 원리가 작용함을 의미한다.

 

네 번째 그림에는 두 명의 사람이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명색名色을 의미한다. 인간존재를 구성하는 정신적 요소들과 육체적 요소들을 의미한다.

 

다섯 번째 그림에는 다섯 개의 창문과 한 개의 문, 혹은 여섯 개의 창문이 있는 집이 그려져 있다. “육처六處”, 즉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의미한다. , , , , 몸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마음이라는 감각기관을 가리킨다. 이들 감각기관은 인간이 외부세계와 접촉하고 경험하는 통로가 된다.

 

여섯 번째 그림에는 두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을 의미한다.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각각에 해당하는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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