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란 무엇인가?”에 답을 할 수 없는 이유

존재란 무엇인가?”에 답을 할 수 없는 이유

 

 

세 번째 질문은 형이상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를 포함하고, 그 문제를 고찰하는 것은, 도대체 객관objectivity이 왜 존재하느냐의 이유에 대한 그 모든 복잡한 신비를 다룬다.

 

사유하는 모든 학파에 속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그것을 질문했다.

 

탐구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은 묻는다. “도대체 왜 신God은 창조했는가? 그 모든 것이 왜 존재해야 했는가?”

 

과학자들은 궁극의 진리를 찾으면서, 보이는 모든 것의 동기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감각적 삶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철학자들은 똑같이 부지런히 조사하면서, 그 모든 도덕적 윤리적 과학들을 통해서, 모든 문명 안에서, 그리고 모든 민족에게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생명을 불어넣는 주관성subjectivity이 무엇인지 찾는다.

 

생물학자는 생명의 근원을 발견하기 위해 조사하면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항상 자신의 조사를 피해가는 것으로 보이는 생명 원리principle of life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수학자들은 모든 등급의 수학 안에서 현현의 형상 측면을 다루면서, 신은 기하학자이고, 법칙과 공식이 우주적으로 침투해 있고, 단일한 것이 다수를 통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그 기하학을 구상하고 있는 실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렇게 문제들은 계속 남아있고, 모든 접근 방식들은 (해결책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다가) 가정이라는 막다른 길에서 끝나고, 그렇게 파악하기 어려운 성질을 갖고 있는 어떤 궁극적인 것을 인식하면서, 인간들은 표면적으로 생명과 지성의 어떤 근원을 단정할 수밖에 없고, (종교적인, 과학적인, 혹은 철학적인) 그들의 마음 성향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그것을 부르게 된다.

 

, 우주적 마음, 에너지, , 절대자, 미지의 존재, 이들 용어들과 다른 많은 용어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은 형상 측면을 통해서 그 형상 내부 안에 머무는 존재Dweller를 찾으려고 하지만, 아직 그를 발견할 수 없다. 그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뇌의 한계 때문이고, 영적인 것을 알 수 있고, 그를 접촉할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수단이 되는, 그런 메카니즘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우주불 논고에서


시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9-01 (목) 22:47 1년전
계속 부정하다 보면...힌두의 방식처럼... 어떨까요? ^.......^ ;;; 말문이 막히고 사유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 어이가 사라질 때까지 추궁해 들어가면요...? ㅎㅎㅎ 설마 칸트처럼 수리적 논증이 안 되는 명제들은 그저, 선언,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요가인으로서 최선의 방법은 수행, 수행, 또 수행 뿐이겠죠? 유추와 상응, 소우주와 대우주의 관계를 탄트릭하는 한도 안에서...? 정말 우리에게 가르침을 전해주신 대스승께서는 가끔 유머 또한 철철 넘치시는 것 같습니다...이상스레 원전 읽다 빵, 터질 때가 이따금 있습니다...그러다 문득 개미처럼 작아지는 두뇌의 싸이즈에 절망도 하게 되구요....... ^,^(슬슬 그 뇌가 맛이 가고 있는 걸지도...)

그런데, 참 원전 여기저기 그 답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도 하던데요...
요가수트라에서도 그렇고...아닌가...?!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인간의 뇌로 이해하는 한, 또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는 말씀으로도 여겨지네요.
'무지개 잡으려는 소년' 같아요...존재의 시원에 관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좋은 가르침, 오늘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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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9-02 (금) 18:20 1년전
신, 우주적 마음, 에너지, 힘, 절대자, 미지의 존재, 이들 용어들과 다른 많은 용어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은 형상 측면을 통해서 그 형상 내부 안에 머무는 존재Dweller를 찾으려고 하지만, 아직 그를 발견할 수 없다. 그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뇌의 한계 때문이고, 영적인 것을 알 수 있고, 그를 접촉할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수단이 되는, 그런 메카니즘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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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번엔 질문 형식으로 여쭙겠습니다.
위 마지막 문단이요, 물론 그것을 읽었다고 안다, 할 순 없겠지만요, 명상으로 알았다, 할 순 없겠지만요...
위 내용에 대한 답을 성자 파탄잘리는 4권 4-6절에서 비교적 직접적이고 상세히 제시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 해도, 위 내용과 상치되지는 않는 것인가요?
최초의 떨림, 바사나, 를 will to be, 로 제시했다한들, 우리는 그저 문구로 읽을 뿐이라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그 존재를 우리 인간들 뇌로는, 발견할 수 없다, 에 한정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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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gm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9-03 (토) 00:39 1년전
위트 넘친 댓글에다 질문까지....정신을 맑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변은 내일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일단은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그 동안, "요가수트라" 수업에서 다루었듯이, 형상 안에 머무는 자를 드러내는 것은 "뇌brain"가 아니라, "마음mind"입니다. 우리가 발달시켜야 하는 메카니즘은 뇌가 아니라, 마음으로 총칭되는 기능입니다. 마음과 뇌를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인데, 육체에 대한 집착과 동일시에서 충분히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마음과 뇌의 활동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로 명상을 통해서 마음의 존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마음 고유의 활동과 발달을 통해서 내재하는 존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DK대사의 저서 곳곳에서 육체는 원리principle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는 마음의 기능에 반응을 하는 물질이고, 뇌에 자극을 주는 존재는 멘탈체이고, 다시 그 멘탈체는 상위 멘탈 차원의 진동에 반응함으로써, 내재하는 존재의 언저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내재하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은 상위 멘탈 차원의 기능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상위 멘탈 차원조차도 초월하는 때부터, 내재하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멘탈체가 탐구의 도구가 아니듯이, 뇌 또한 탐구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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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9-03 (토) 01:09 1년전
움.....더더욱 화이트매직 강독강해가 기다려지는 마음, 입니다...^^;;;
그러다보면 조금 더 그 언저리에 닿으리란 희망과 믿음을 안고서요...감사합니다, 명쾌한 답변!
하지만...여전히 뭔가 남는 게 있습니다.
도구들의 연쇄적 고리가 결국은 이어지면서 확산, 확장되리라는 추정, 내지 선험적인 인식 범위에서 스스로 잘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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