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행의 위험성과 세 종류의 죽음(1)

명상수행의 위험성과 세 종류의 죽음(1)

티벳불교의 한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죽을 때 진화의 정도와 카르마에 따라서 영혼이 빠져 나가는 통로가 다른데, 살았을 때 매우 동물적이고 극악무도한 사람은 발바닥으로 빠져나가고, 그 보다 조금 낫지만 역시 동물적인 탐욕 속에서 악하게 산 사람은 항문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평범한 진화 단계에 있는 사람은 배나 옆구리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이 온화하고 선한 사람은 가슴으로 빠져나가고, 고도의 영적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은 머리 정수리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티벳불교 수행 대부분은 죽음의 과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모든 영적 수행은 본질적으로 죽음의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벳불교의 금강승Vajrayana 수행에서 다루는 각종 최상승 탄트라 체계는 결국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을 프로그램화한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은 그대로 명상 과정에서 약간 축소된 정도로 똑같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가 명상의 궁극의 목적이라고 하는 사마디samadhi의 체험은 사실상 인간이 삼계 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죽음의 마지막 단계를 가리키는 말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사라지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다른 차원에 초점을 맞추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은, 죽음 뒤에 정적이고 공허한 침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동적인 활동 상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사마디의 체험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정지된 정적이나 소멸이 아니라, 실제로는 다른 차원의 매우 역동적인 활동성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명상에 드는 과정은 사실상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축소판이고, 다시 명상에서 깨어있는 육체적 의식으로 나오는 과정은 태어나는 과정을 그대로 나타낸다. 바람직하고 제대로 된 명상 수행은 죽음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죽음의 과정과 무관한 명상들은 그냥 기분전화 내지는 자기최면이나 집단최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명상 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현상들 중 하나는, 명상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소스라치게 놀라서 깨어나는 경우다. 그런 경우는 사실상, 본능적으로 죽음의 과정에 수반되는 현상을 경험함으로써 공포감에 놀라서 깨어나는 경우다. 명상은 그 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가가야 한다. 자칫 감정적 위안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혹은 지극한 기쁨과 희열을 경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명상을 할 경우, 그런 명상이 오래도록 진행되면 반드시 죽음의 과정에 수반되는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의식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면, 제일 먼저 육체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그러면 둔탁한 육체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의식은 감정과 욕망의 매체인 아스트랄체에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육체가 있었을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환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마치 작은 배가 칠흑같이 어두운 날씨에 파도가 휘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 명상 과정에서도 그런 현상이 반드시 수반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아스트랄 현상에 휩쓸리면서 매우 많은 시간을 혼란과 무지 속에서 환영에 휘둘리면서 보낸다. 명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빠져서 인생을 낭비하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고사하고 더욱 무지해지고 어리석게 삶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책이나 강의를 통해서 명상수행을 통해서 고도의 영적 자유와 지혜를 성취한 스승들의 이야기만을 듣는다. 그러나 그렇게 몇 사람 안 되는 성공한 명상가들이 있는 반면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패한 명상가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치 자영업자들이 언젠가는 큰돈을 벌어서 재벌회장은 못되어도 어떤 물질적 근심도 없이 살 수 있기를 희구하면서 사업을 시작하지만, 열에 아홉은 실패하거나 근근이 사업을 유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과 같다. 명상의 세계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육체적 세계에서 물질적 부를 이루는 것도 그렇게 힘들고 위험스럽기까지 한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의식의 세계를 장님인 채 여행한다는 것은 그냥 위험스런 시도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명상가들이 각종 정신적 질환과 신체적 장애로 고생을 하고, 심지어는 몇 생 동안 갚아야 하는 카르마를 지어서 고생스런 삶을 오랜 세월 동안 치러야 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사업설명회를 하면서, 성공한 지점의 사례만 대대적으로 광고하지만, 그에 비해서 실패했거나 고생스럽게 하루하루 사업을 하고 있는 많은 수의 가맹점들이 있다는 것을 홍보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명상을 가르치고 홍보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함정 중 하나는, 자신이 바라는 먼 미래의 목표를 마치 지금 이루어져 있는 현실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영적 깨달음, 초월적 지혜, 지고의 행복감......그런 것들은 목표일지 몰라도, 공허하면서 동시에 위험스런 선전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어떤 여행 가이드가 자신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외국의 관광지를 사람들에게 홍보하면서 여행객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가이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여행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 그곳에 갈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다. 그런 가이드를 믿고서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여행지를 향해 이륙하는데, 수많은 명상교사들이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많은 명상교사들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목표가 단지 자신이 꿈꾸고 있는 상상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그것이 현실인 양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주장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말하고 따라 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조차도 그 세계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를 홍보하면서 가라고 종용하고, 함께 그들이 만든 꿈속에 살자고 부추긴다.
 
그런데 그들 명상교사들과 명상을 배우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명상수행을 하면서 실제로 행하고 있는 것은, 알고 보면 죽음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죽음이 시작될 때 영혼이 빠져나가는 출구가 다르듯이, 그리고 출구가 다르면 사후세계의 경험과 종류가 다르듯이, 살아서 행하는 명상 경험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사후 세계의 경험이 달라진다. 명상 경험은 그 속성상 일상생활과 달리 매우 집중적이고 자기몰입적이기 때문에, 명상 경험이 의식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그 만큼 명상수행이 위험하다는 뜻이다.

흡연자들이 장시간 동안 흡연을 하면서 니코틴을 흡수하지만, 갑작스럽게 심각한 신체적 장애가 생기지 않는 것은 매우 적은 소량의 니코틴을 장시간에 걸쳐서 적응하면서 흡입하고, 흡입된 니코틴은 신체적 동화작용에 의해서 상당부분 제거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농축된 니코틴은 소량만 흡입해도 치명적이다. 집중된 명상수행은 바로 그런 것이다. 집중된 명상수행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되면, 반드시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런 변화는 일상생활에서 감정적 정서적 반응만이 아니라 지성적 반응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생활전반에 그 결과를 나타내고, 최종적으로는 죽음의 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명상수행은 명상을 하는 사람의 도덕적 생활, 사회적 생활, 감정적-지성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한 자기분열과 의식의 혼란이 발생한다. 수십 년 동안 명상 수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심각한 자기망상과 비사회적 의식 상태 속에 빠져 있거나, 상식 이하의 도덕적 인식의 부족, 감정적 혼란과 지성적 노력의 태만함이 목격되는 일반적인 특징들이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명상을 지도하고 가르친다는 데서 더 심각한 결과가 발생한다.
 
최근에 뉴스매체들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그루밍 성추행은 어린 청소년들이나 특정 종교 조직의 신도들이 성직자나 교사와 같은 사람들에게 겪는 성추생과 성폭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그루밍Grooming”이란 수식어는, 정신적인 의존관계 내지는 지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종교집단이나 교육기관 같은 데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적용되는 말이다. 어린 청소년들이나 피교육자, 또는 신도들은 교사나 성직자를 자신들의 안내자 혹은 보호자로서 생각하고 믿는데, 그렇기 때문에 성직자나 교사가 저지르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특수한 심리상태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성범죄를 성직자나 교사의 안내와 보호와 애정에 의한 것인지, 단지 성적 욕망에 의한 것인지 혼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성직자가 목표로 제시하는 종교적 믿음의 이상향이나 교사가 제시하는 교육적 목표에 집중되어서 열망하고 있는 경우에, 피해자들은 더욱 판단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 혹은 영적 깨달음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성적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신도들은 거부하기 어렵다. 게다가 성직자나 교사의 왜곡된 열의와 성적인 애정 표현이 진실해 보이는 표정과 말투 속에서 표출되는 경우 더욱 어려울 것이다. 상식적인 도덕적 사회적 수준에서 평가해야 될 사건을 왜곡된 종교적 경험이나 세뇌된 교육을 통해서 볼 경우, 반드시 판단에 혼란이 생기고, 그 결과는 정말 절망적일 수조차 있다. 그런 사건 이후에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혼란과 분열은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 절망적일 수도 있다.
 
명상수행을 가르치고, 정신세계와 관련된 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심리적 상황에 처해 있다. 상상력은 아스트랄체의 본질적 속성이다. 다시 말해, 명상 교사의 상상적 세계는, 그 사람에게서 명상을 배우는 사람들의 아스트랄 상상력과 쉽게 결합되어서, 그들만의 집단적 아스트랄 환영을 창조한다. 인간은 거의 전적으로 감정적 정서적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호간에 감정적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게 되고,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아스트랄 환영이 강화되면, 지성적 판단력과 사회적 판단력이 점점 더 축소되고 제한된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명상을 배우는 사람들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정서적 의존관계에 빠지게 되고, 모든 것을 감정적 환영 속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일종의 그루밍상태에 처하게 된다.
 
문제는 위에서 말했듯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사후 세계가 결정되듯이, 그리고 그렇게 결정된 사후세계가 다시 다음 생을 결정하듯이, 집중된 특정한 명상수행은 그 사람의 의식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살았을 때만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DK대사는 인간들이 죽음에 이를 때 영혼이 빠져나가는 출구에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머리 정수리.
둘째, 심장 조금 위쪽.
셋째, 태양신경총 센터.
 
글 서두에서 말했던, 발바닥이나 항문으로 의식이 빠져나가는 경우는, 아마도 너무나 극악무도하고 동물적인 인간의 의식이 빠져나가는 경우를 빗대어 말한 것이든가, 실제로 종교에서 말하는 지옥과 같은 세계로 들어갈 때를 가리키는 것일지 모르겠다.
 
명상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음에 이를 때 위와 같은 출구로 의식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정말 유념할 것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빠져나가는 출구가 다르듯이, 어떤 명상수행을 했느냐에 따라서 의식이 빠져나가는 출구가 다르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를 때 우연적으로 특정한 출구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고 살았고, 어떤 의식에 집중해 있었느냐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의식이 빠져나가는 출구가 결정된다.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죽을 때 머리 정수리를 통해서 의식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원숙하게 깨어있는 의식 상태로 이루어질 때, 그 사람은 해탈의 문턱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구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명상수행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명상이 어떤 차원에 의식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인지, 그 결과 의식을 어떤 통로로 나가게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명상을 가르친다. 각 사람의 의식은 오라aura라고 불리는 다양한 차원의 생체 에너지장에 감싸여 있는데, 긴밀히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오라는 서로 중첩되고 섞이게 되어 있다. 특히,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의존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오라는 더 쉽게 섞이면서 결합된다. 대체로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반응에 민감한 청소년들이나 여성들이 종교에 빠지기 쉽고, 의존적 관계에 빠지기 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명상수행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배우는 사람들의 정서적 감정적 오라가 섞이고 결합하면, 그들만의 공유하는 공통된 집단적 에너지장을 형성하고, 그 결과 사람들은 혼자서 경험하지 못했던 강한 감정적 경험과 각종 신비적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모든 경험들은 순전히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경험들이다. 그리고 환영을 본질로 한다. 그럴수록 지성적 판단력과 상식적인 사회적 도덕적 판단력은 약화되고, 배우는 사람들이나 가르치는 사람 모두 하나의 감정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 중 누구든지 쉽게 맘만 먹으면 그 집단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가 있게 된다.
그루밍이란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뒤섞인 오라는, 육체적 경험들과 다르게 가까이서 만나지 않거나 오랜 시간 동안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각 사람의 오라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런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들의 의식은 이미 심각한 영향을 받은 상태로 있다. 물론, 사후세계에 가서까지도 그 영향은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명상수행은 지극히 위험스럽고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도 본질적으로는 같다. 장시간에 걸쳐서 저농도의 니코틴을 소량 흡입하는 사람이나 단기간에 고농축된 니코틴을 흡수하는 사람이나 체내에 니코틴이 축적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에는 저농도의 니코틴을 희식시키고 중화시킬 수 있는 다른 물질이 계속해서 체내에 흡수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고, 문제가 발생해도 치명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희석시키고 중화시킬 만한 시간과 여력을 허용하지 않은 채 흡입한 고농축된 니코틴으로 인해서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일상생활의 아스트랄 경험과 명상수행의 아스트랄 경험은 그런 차이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영적 스승들은, 오랜 시간 동안에 걸친 도덕적 사회적 감정적 지성적 발달과 조화를 수반하지 않으면서 어떤 명상도 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맞닥뜨린 경험들을 소화해내고 조정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중된 명상경험을 통해 형성된 집단적 아스트랄 오라는 강한 유동성과 전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날 자신이 전혀 자각하지 못하면서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결과, 그 행위에 대한 심각한 반발과 문제제기에 직면하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발견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러면 감정적 정서적 위기감에 휩쓸리게 되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동요하면서 분열된 아스트랄 오라의 장애 때문에, 의식은 축소되면서 더욱더 판단력이 왜곡되면서 제한된다. DK대사는, 잘못된 명상수행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지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여년 동안 사람들에게 불교와 신지학, 그리고 DK대사의 가르침을 가르치면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었다.
 
명상은 어떻게 합니까선생님께선 어떤 명상을 하십니까?”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곤 했다. 명상을 하는 목적이 혹시나 육체적인 건강에 있다면, 적극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운동이나 식이요법과 같은 섭생법들을 실천하든가, 아니면 질병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되는 병원을 다니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건강을 돌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적 혼란이나 불안과 같은 감정적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관찰하는 생활을 하라고 권한다. 관련된 심리학 서적 같은 것들을 참고하면서 자신의 감정적 경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반드시 건전한 신체적 활동, 예를 들면, 규칙적인 운동이나 직업적 노동을 하라고 말해준다.

그런 다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허전함과 불만족이 있다면, 높고 넓은 주제들을 다룬 분야에 집중해서 관심을 가지라고 말해준다. 예를 들면, 철학이나 종교의 원리, 과학의 원리, 사회정치적 개념들이 연구되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해준다. 그런 다음에(!) 적극적으로 명상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해준다. 명상은 그 때 비로소 제대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거기까지 설명하는 단계에 이르면, 거의 대부분의 질문자는 처음 보였던 진지한 눈빛이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면서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곤 했다.
 
명상은 정말 위대한 지혜와 의식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든 창조력과 천재성의 원천을 접하는 과학이다. 과거에는 그런 목표를 해탈, 구원, 깨달음.,.등과 같은 말들로 표현했을 뿐이다. 수많은 감정적 환영으로 뒤범벅된 과거의 용어들에 속지 말아야 한다.
 
명상의 세계는, 육체적 경험, 감정적 경험, 지성적 경험, 그리고 그런 것들과 전혀 무관하면서도 그런 경험들의 진정한 근거가 되는 상상 밖의 어떤 차원들의 경험을 포함한다. 위에서 말한 다양한 독서와 관심영역들에 익숙하고 숙달될수록, 그 만큼 명상의 경험은 다채로워지고, 동시에 제한되고 축소된 경험으로 인해서 생기는 의식의 왜곡과 착각을 피하고 극복할 수 있다.

DK대사의 가르침을 30년 동안 전달했고, 동시에 수천 명에게 명상을 지도했던 앨리스 A. 베일리는, 지성이 발달되고 광범위한 관심을 건전하게 조직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현대의 비즈니스맨이 일상적인 사교생활과 가벼운 지성적 사유와 정서적 생활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명상적 수행에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                                                      *  출처 -  직메의 서재 https://blog.naver.com/marmion0/221395048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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