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매직 논고” 수업 중간 소회(2) : 1- “선택”에 대한 비의적 설명

"화이트매직 논고” 수업 중간 소회(2) : “선택”에 대한 비의적 설명 -1


화이트매직 논고A Treatise on White Magic” 수업을 진행한지 어느 덧 20개월째다. 현재  전체 분량의 3분의 2 조금 넘게 진도가 나갔다. “화이트매직 논고화이트매직15규칙을 주석한 것인데, 이번 주에 가장 분량이 많은 (전체 쪽수 640쪽 중 170쪽을 차지하는) 10번 규칙을 끝냈다. 10번 규칙을 수업하는 데만 7개월이 걸렸다. “화이트매직 논고의 부제는 제자의 길The Way of the Disciple”인데, 또 다른 부제는 아스트랄체의 통제. 10번째 규칙은 바로 아스트랄체에 대한 통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711번 규칙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두 가지 부제는 결국에 같은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제자disciple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화이트매직을 위해 자격을 갖춘 사람이고, 그 제자가 화이트매직을 통해서 가장 핵심적으로 수행하는 과제가 바로 아스트랄체의 정화인데, 아스트랄 차원의 문제(환영Glamour)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아스트랄체의 정화를 전제로 한다. 제자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아스트랄체의 정화를 통해서 상당한 정도로 아스트랄체를 통제하고 있는 단계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의적 관점에서, 아스트랄체를 통제하고 정화시키는 일은 인간 의식의 확장과 변형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수많은 열망자들이 아스트랄 차원의 환영 속에서 길을 잃는다. 부처께서 번뇌로부터 해탈하는 가르침을 전했을 때, 그 번뇌는 비의적 용어로 표현하면 아스트랄 차원의 문제를 가리킨다. 인간이 아스트랄 차원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을 가리켜 번뇌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을 카마-마나스적인 인간이라고 부른다. 카마Kama, 즉 감정적 욕망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나스Manas라는 지성적 원리와 결합된 상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현재의 인류다. 그런 의미에서, “화이트매직 논고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DK대사는 물질적 현상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경제의 법칙The Law of Economy”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적 현상계는, 단순히 우리가 육체적으로 살고 있는 육체 차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욕망의 세계, 지성적 세계 모두를 가리킨다.
 
경제의 법칙의 핵심은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다. 기회비용은,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했을 때, 그 선택으로 인해서 잃게 되는 다른 것의 가치를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음식점에서 8,000원짜리 육개장을 한 그릇 사서 먹었으면, 나는 그 8,000원으로 먹을 수 있었던 다른 음식, 예를 들면, 순두부백반이나 불고기백반 같은 음식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그 만큼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대가로 육개장을 구매한 것이다. 그 말은, 내가 8,000원으로 향유한 육개장의 가치는 잃어버린 순두부백반이나 불고기백반의 가치와 같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육개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순두부백반이나 불고기백반을 먹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경제의 법칙은 최소비용의 최대효과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그 말은 기회비용이란 개념의 연장선에 있다. 어떤 가치를 포기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는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누릴 수 있는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심리는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장을 보는 가정주부는 제한된 돈으로 최대한 많고 질 좋은 식재료를 구매하기 위해서 그 자신이 적용시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의 기준에 의해서 장을 본다. 가정주부의 마음에는 당연히 무엇을 구매해서는 안 되느냐의 결정도 있다.
 
DK대사가 물질적 현상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경제의 법칙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이 물질적 현상계 내에서 살아갈 때 어떤 법칙의 지배를 받는가에 대한 매우 탁월한 표현인 것 같다. 심리학의 가장 기본적 개념은 자극과 반응인데, 그 말은 결국 선택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물학적으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수정란이라는 세포가 형성되는 순간부터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비의적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적용되는 선택의 문제는, 결국 영혼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적 질환은 결코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비롯된다고 할 수 없다. DK대사는 에소테릭 힐링에서 유전적 질환은 영혼의 선택에 의한 것으로, 새로 태어나는 사람의 개인적 카르마와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혼은 그 사람의 카르마가 현상화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생물학적 요소를 제공할 수 있는 특정 부모를 선택하기 때문에, 특정한 유전적 질환이 발생하는 데 있어서 부모는 단순히 하나의 간접적 환경을 제공할 뿐, 직접적인 원인은 새로 태어나는 그 사람 자신의 카르마 속에 있다고 한다.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여러 자식들이 모두 동일한 유전적 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수많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선택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태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 심리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이번 생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각자가 하나의 연속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진화의 단계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다시 말해, 지성적인 기능이 발달한 심리학자들의 눈으로 보면, 사람들의 선택은 매우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자신이 도달해 있는 진화 단계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선택 속에는 각자의 고유한 동기와 목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불합리하고 충동적인 선택으로 보이겠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일 수 있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마트에서 사소한 물건 하나를 구매하는데도 그 사람의 오랜 진화 과정이 개입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선택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선택에 적용되는 목표와 동기에 대해서 심리학자들만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구매한 그 사람 자신도 모른다. 어떤 목표와 동기에 의해서 특정한 선택을 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특별한 탐구방법과 노력이 필요하다.
 
20개월째 진행되고 있는 화이트매직 논고수업 역시 선택이란 면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일차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강사로서 화이트매직 논고라는 텍스트를 선택하는 데도 목표와 동기를 고려해야만 했고, 나 자신의 고유한 기준에 따라 적용되는 기회비용의 법칙과 효용극대화의 법칙에 따라 수업의 방향과 수업 기간을 정해야만 했다. 물론, 거기에는 장소와 경제적 비용까지 고려하는 것이 포함된다. 나 자신의 선택에 적용되는 표면적인 목표와 동기는 내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이지만,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드러나지 않은 목표와 동기는 쉽게 의식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숨겨진 동기와 목표는 그 선택이 상당한 시간 동안 현실화된 이후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역시 그들 나름의 표면적인 목표와 동기,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흐른 다음 드러나게 될 숨겨진 목표와 동기에 의해서 선택이라는 행위를 했을 것이고, 거기에는 엄연히 경제의 법칙이 작용했다. 그리고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강사로서의 선택은, 이미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과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만 강사와 수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강좌가 개설되는 과정에서 강사 역시 학생과 학생에게 제공되는 수업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처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수업이 진행되는 중에, 그리고 수업이 끝나는 시점까지 동일하게 적용된다. 상호간의 선택이 일치하고 긍정적일 때, 그 수업은 매우 생산적이고 만족스런 것이 될 것은 명백하다.
 
모든 비의적 공부의 핵심은, 그 공부에 참여하고 있는 학도가 자신이 공부하기로 선택한 행위 이면에 어떤 목표와 동기가 있었는지 의식적으로 자각하는데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특정한 시기까지는 그 목표와 동기를 전혀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삼계에서의 자신의 삶을 지칭하는 특정한 인성자아Personality가 선택된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숨겨진 목표와 동기, 즉 영혼의 의지를 자각하는 것이 모든 진정한 영적 공부의 핵심이다.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 영혼의 의지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의 순간이듯이, 비의적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자신이 그 공부를 하게 된 숨겨진 목표와 동기를 자각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인간 진화의 여정에서 끝 무렵에 이를 때에 비로소 영혼의 의지를 알 수 있듯이, 비의적 공부 역시 마무리할 때쯤 되어야 자신이 왜 그 공부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경우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 공부를 마친 후 수 년이 지나서야 그것을 자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번 생이 다 지나도록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비의적 가르침은 반드시 학도 자신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재현할 때만 뚜렷하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스승들이 인내의 중요성을 왜 그렇게 강조했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 것이다.
 
매번의 삶을 살면서,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어떤 목표와 동기에 의해서 이 삶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면, 지금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목표와 동기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워질 것인가! 그것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내가 미래에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가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이 세상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그 만큼 많아질수록, 그러면 세상은 보다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갖게 될 때, 사회는 혼란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모든 선택은 반드시 변화를 낳는다. 내가 음식점에서 순두부백반을 사먹지 않고, 육개장을 먹었을 때, 내 몸은 육개장을 구성하고 있는 고유의 물질들을 소화시키면서, 그 물질들에 깃들어있는 생명의 에너지를 흡수할 것이다. 내가 먹는 음식은 반드시 내 몸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그 음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육체적 목표와 동기가 현실화된 것이다. 물론, 그 음식을 한 번 먹음으로써 나의 감정, 욕망, 지성은 거의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고, 받더라도 매우 일시적이고 사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육체는 확실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음식이든 약물이든 성형이든 문신이든, 내 몸에 무엇인가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매직 논고수업을 선택했다는 것은, 특정한 음식을 먹었을 때 육체는 그 음식이 제공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겪듯이, “화이트매직 논고가 제공할 수 있는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영적 가르침에서 강조하는 개념 중에 카르마가 있는데, 지금까지 카르마는 육체적인 차원에서만 강조된 면이 있다. 인류적인 차원에서, 카르마가 육체적 차원을 넘어 미세한 차원에서까지 작용한다는 가르침을 처음으로 널리 전한 스승은 그리스도였다.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을 한 것이니라.”
 
인간은 육체적 차원에서 특정한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육체적 결과를 경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부적으로 말하면, 아스트랄 차원이나 멘탈 차원에서도 어떤 행위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현재로서는 마음의 차원, 즉 멘탈 차원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화이트매직 논고의 특별함은, 마음의 차원에서 발생한 선택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류의 발달 단계상, 음식과 같은 육체적인 선택의 문제에서는 대중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일치하는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어느 정도 교육과 경험을 쌓게 되면, 어떤 음식이 몸에 유익하고, 피해야 할 음식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자신의 식습관에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감정, 지성의 영역에서 어떤 선택이 유익하고 어떤 선택은 피해야 하는지 일치된 공감대가 없고, 인종이나 계층에 따라서, 성별에 따라서, 연령에 따라서, 그 기준은 제각각이고, 심지어는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육개장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없고, 말도 되지 않듯이, 특정한 분야의 종교, 철학, 교리, 사상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말도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염된 음식이나 소화시킬 수 없는 물질이나 해롭다고 검증된 물질이 들어간 음식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처럼, 종교, 철학, 교리, 사상에서도 공통으로 인정되고 있는 피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의 선택인데,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지 말아야 하느냐와 관계있기 때문이다.
 
폭력성, 육체적 만족, 분노, 두려움에 의한 의심, 배타적 분리감, 자만심, 이기적 만족, 자기중심성, 두려움 조장, 거짓말, 위선, 부정적인 감정적 태도, 속물적인 이기심을 위장한 비판...그런 것들을 강화시키고 자극하는 요소들은 반드시 피해야 할 요소들이다. , 선택하지 말아야 할 요소들이다. 음식을 먹을 때의 선택에 반드시 부정적 의미의 선택이 개입되어 있듯이, 특정한 사상을 다루는 공부에 있어서도 동일한 선택의 과정이 적용된다. 어떤 방향으로 특정한 주제를 공부할 때는 반드시 그 이면에 부정적 선택의 과정이 동반되는데, 공부에 참여하는 사람은 참여함으로써 동시에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부정적인 선택에 변화가 생기면현재 진행되고 있는 선택에 반드시 변화가 생기게 된다. 바람직한 영적 공부에 있어서 부정적 선택의 대상은 위에서 말한 폭력성, 육체적 만족과 같은 것들이다. 누가 먹든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오염된 음식이나 해로운 물질이 들어간 음식을 피하는 문제는, 육개장을 먹느냐 순두부백반을 먹느냐의 문제와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되듯이, 폭력성, 육체적 만족...그런 요소들을 부정하는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 영적 공부는 강사나 학생 모두에게 반드시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한 결과도 생길 수 있다. 오염되어 있거나 몸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간 음식은 육개장이든 순두부백반이든 상관없이 선택하지 말아야 하듯이, “화이트매직 논고”, 불교, 기독교, 요가명상...그것이 어떤 것이든 영적 성장과 변화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폭력성, 육체적 만족, 분노, 두려움에 의한 의심, 배타적 분리감, 자만심, 이기적 만족, 자기중심성, 두려움 조장, 거짓말, 위선, 부정적인 감정적 태도, 속물적인 이기심을 위장한 비판...그런 것들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되돌아보면, 매번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위에서 말한 모든 과정이 일어났다. 18년 전에 처음으로 신지학 강좌를 시작했을 때, 7년에 걸쳐 티벳불교 수업을 진행했을 때, 그리고 DK대사의 가르침을 지난 5년 동안 진행하면서, 무엇보다 힘든 문제는 수업 내용 그 자체가 아니었다. 위에서 말한, 폭력성, 육체적 만족, 배타적 분리감, 의심, 자만심, 이기심, 자기중심적 만족, 분노...그런 것들이 가장 힘든 문제였다. 그런 문제는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강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런 요소들이 고개를 들 때면, 그 동안 함께 나누었던 고귀한 가르침, 헌신, 믿음, 친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롱, 비난, 의심, 냉소가 지배하면서 절망적인 기분이 강사와 학생들의 모든 의욕을 잠식해버린다.
 
그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은 경제의 법칙이다. 그것은 매순간 각자의 고유한 선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고, 서로의 선택들이 충돌하는 현상이다. 저마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고유의 목표와 동기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때그때 각자의 생의 주기에 따라서 어떤 때는 선택들이 일치해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낳지만, 어떤 때는 선택들이 충돌하면서 균열과 파괴를 낳는다. 하나의 강좌가 끝났을 때,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 한 사람들은 아마도 그 강좌가 끝날 때까지 각자의 선택들이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강사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마지막까지 수업 내용과 관련해서, 앞에서 열거한 부정적인 요소들이 제기되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수업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수업을 떠난 사람들은, 어느 시기까지는 선택이 일치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다른 선택의 길이 제기되면서 그 이전의 선택은 일치점을 잃어가다가, 결국에는 일정정한 시간 동안 선택의 조정기간을 거친 끝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모든 선택은 엄중하다. 어떤 사소한 선택도, 그 선택은 변화를 낳는다. 우리 모두의 삶은 각자의 선택의 결과이듯이, 매순간, 그리고 주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중요한 선택의 경험들은, 그 자체로 우리 각자의 삶을 만드는 재료들이다. 우리는 선택한 바로 그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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