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세계의 문제” 원전 강독 후기, 삼계三界의 환영(2)

환영: 세계의 문제원전 강독 후기, 삼계三界의 환영(2)

DK대사는, 인간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들이, 예를 들면, , 물질적 소유물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적 욕구와 경험들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환영들은 인간의 올바른 인식을 왜곡하고 제한하면서, 실재를 보지 못하게 하고, 그 결과 계속해서 삼계에서 윤회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적인 가르침에서 볼 때, 감정적 환영의 세계는 번뇌를 가리킨다. 부처께서는 삼사라의 세계는 번뇌가 다함이 없이 지속되는 세계라고 했다.

 

부처에게 있어서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번뇌의 근본적인 원인인 무지를 극복하는 것이다. 부처에게 있어서 번뇌의 세계, 고통의 세계는, 단지 고통스럽고 불쾌한 경험만 하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만족스런 경험도 포함하는 속박된 덧없는 세계를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번뇌 그 자체는 무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번뇌는 지혜를 가로막는 장애이고, 그래서 번뇌장이라고 부른다. 비의적 용어를 사용하면, 번뇌장은 아스트랄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들을 의미한다. 그것은 방대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인류의 진화의 특정한 주기에서 현저하게 부각되는 경험세계다.

 

DK대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인류에게 아스트랄 차원의 환영은 가장 지배적이다. 현재로서는, 매우 적은 수의 지성적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성 차원의 환영이 있다. 온갖 지성적인 체계, 개념, 이론, 학설, 교리, 사상, 이념 등이 지성적 차원의 환영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성적 인식은, 그들 스스로의 독자적인 인식에 근거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맹목적인 학습을 통해서 습관적으로 믿거나 동일시하고 있는 것들이다. 특정한 문화권에 태어나면서부터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게 되어서, 너무나도 당연시하면서 습관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노력이 지성적 환영에 속한다. 좀더 다르게 말하면, 대다수의 지성인들이 사고하고 주장하는 것은, 진정으로 지성적인 소수가 만들어내고 형상화시킨 지성적 환영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인 양 동일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단적인 지성적 환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수많은 감정적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존재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지성적 경험들과 동일시한다. 불교에서는 그런 지성적 경험들을 소지장”, 즉 인식의 장애라고 부른다. DK대사는 그것을 멘탈 차원의 환영이라고 부른다. 인류의 진화 단계상, 현재로서는 멘탈 차원의 환영에 지배되는 사람들은 소수다. 여기서 지배된다고 할 때는, 의식적으로 멘탈 환영을 만들어내고 구성하는 가운데 그것에 속박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멘탈 환영에 지배받기 보다는 감정적인 아스트랄 환영의 지배를 받는다.

 

불교의 역사에서, 소지장은 심각하게 오해되어 왔다. 지성적 경험 그 자체가 소지장의 영역이다 보니, 소지장에 대한 연구와 추론은 그 자체로 한계를 안고 있다. 지성적 연구 자체가 소지장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멘탈 차원에서 비롯되는 인식의 장애를 이해하고 통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인식을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한 지성적인 인식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정의할 수 있는 일반화된(일반적인 지식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가 없기 때문에, 지성적 인식을 넘어선 인식을 직관intuition”이라고 부른다. 불교적인 표현을 쓰면, 직관을 깨달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불교 연구가들과 수행자들은 아스트랄 차원의 장애, 즉 번뇌장을 극복하는 것을 깨달음, 혹은 직관이라고 생각했다. 번뇌, 즉 감정적 굴레를 극복했다고 하는 주장이야말로 지성적 굴레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소지장은 매우 특별한 수행자들에게 적용되는 가르침이었다. 소지장을 다룰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감정적 욕망의 환영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DK대사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적 삶은 감정적, 지성적 환영의 지배를 받는 제약된 삶이다. 인간의 삶은, 순수하게 육체적인 충동만이 아니라, 온갖 감정과 욕망, 수많은 지성적 자극과 반응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적 존재 그 자체가 환영이다. 인간의 육체적 생활의 고통, 복잡함, 광폭함은,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심각하게 감정적 욕망과 지성적 활동에 지배를 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감정적 스트레스나 지성적 활동으로 인해서 휴식조차 제대로 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감정적 스트레스는 인간의 신경계와 혈액순환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생명력은 수없이 왜곡되고 차단되고, 그 결과 과도한 감정적 긴장을 견딜 수 없는 육체는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인간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윤회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번 생에만 생긴 감정적 스트레스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 동안 개인적으로 축적한 것에서부터,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적인 감정적 스트레스까지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DK대사는 그렇게 육체적인 차원에서 경험하는 환영을 마야Maya”라고 부른다. 마야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육체적인 충동, 감정적 혼란과 욕망의 부침, 지성적 활동이 총체적으로 펼쳐지는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삼계 안에서의 인간의 삶은 환영의 지배를 받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영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일컬어 해탈이라고 부른다. 무지가 진정한 지혜로 바뀌는 순간이 해탈의 시작이다. 단순히 아스트랄 환영은 어떤 것이고, 멘탈 환영은 어떤 것이고, 마야는 어떤 것이라는 식의 지적인 이해로는 근본적으로 진정한 인식을 경험할 수 없고, 존재의 변형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의적esoteric”이라고 하는 것은, 인식이 곧 변형을 동반하고, 변형됨으로써 인식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영: 세계의 문제원전 강독은 인식과 존재의 변형을 위해 매우 유익한 공부가 될 수 있다. 2년 동안 매주 2시간씩 한 문장씩 자세히 읽어가면서 공부했던 원전 수업이었지만, 실제로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다음 생의 목표일 수도 있다. 모든 영적인 공부의 의의는, 그로 인해서 얼마나 변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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